dear. my universe
이승희, 여름의 우울 본문
누군가 내게 주고 간 사는 게 그런 거지 라는
놈을 잡아와 사지를 찢어 골목에 버렸다
세상은 조용했고, 물론 나는 침착했다
너무도 침착해서 누구도 그런 짓을
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할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사는 게 그런 거지 라는 놈을
보는 족족 잡아다 죽였다
사는 게 그런 거지 라고 말하는 이의 표정을 기억한다
떠나는 기차 뒤로 우수수 남은 말처럼, 바람 같은,
하지만 그런 알량한 말들에 속아 주고 싶은 밤이 오면
나는 또 내 우울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고 골목을 걷는다
버려진 말들은 여름 속으로 숨었거나 누군가의
가슴에서 다시 뭉게구름으로 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양이도 개도 물어가지 않았던 말의 죽음은
가로등이 켜졌다 꺼졌다 할 때마다 살았다 죽었다 한다
사는 게 그런 게 아니라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밤
난 내 우울을 펼쳐 놀고 있다
아주 나쁘지만 오직 나쁜 것만은 세상에 없다고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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