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universe
이현호, 징크스 본문
징크스, 너는 폐허로 폐허로만 가자 한다
오라는 일도 가라는 이도 없는 술자리, 꽃자리
뜨뜻미지근한 숨 홀짝이며, 홀과 짝을 가늠하며
죽도 밥도 아닌 삶에, 죽은 삶에
골똘하다가 그만 만취(漫醉), 만취(晩翠)했다
낯선 낯을 마주하며 깨어난 한낮의 어색함으로 삶과 어깨동무하며 혼숙하는 날들이었다.
징크스, 우린 상하의가 분리된 세계를 떠나 원피스같이 완전해지고 싶다
배우지 않아도 뒷골목에서 뒷골목에서 첫 키스를 나누듯이
우리는 입영통지서처럼 불쑥
세상의 비의(秘意)를 알아챘으므로
밀정처럼 은밀히 스며들고 싶다
이인칭도 삼인칭도 될 수 없는 시간 속으로.
징크스, 시간이 나뭇가지에 구름을 꿰어 행장을 꾸린다
열정이 나귀의 발굽을 가볍게 할 순 없다
낙조의 그물을 자져나가는 침묵을 본 적 없다
가없는 우주 속에서 가엾이 녹아내리며
쓸쓸한 안부를 묻는다, 신(神)이 떠난 별에서
징크스, 초점 잃은 피사체같이 흐려지다 남는 건 스스로를 겨눈 살의였다.
징크스, 악다문 울음보 안엔 태어나야만 하는 소리가 있다
징크스, 직립의 소슬한 무게를 해거름 지평선으로 잡아당기는 무서운 애련이 있다
징크스, 폐허가 된 고성(古城)의 반 토막 기마상은 영원히 달리고 있다
징크스, 흰개미들이 꿈속으로 물어다 나르는 부서진 곤충의 날개
참을 수 없이 떨리는 요의(尿意)
시간이나 죽여야지 했는데 시간이 나를 죽이고 있는
삶의 부목(副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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