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universe
어제, 오늘 본문
영화를 봤다. 남들은 다 봤지만 나는 늦게 본 <밀정>
포스터와 내가 뽑은 포토티켓. 오랜만에 혼자 보는 영화였다. 집 근처에 1.2km 쯤 떨어진 제일 가까운 영화관이 있는데 이 영화관을 가기 위해서는 조금 무서운 길을 지나가야 한다. 묘사하자면 '내가 여기서 납치돼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싶은 그런 외진 길. 하지만 몇 번 다녀 봤다고 조금은 익숙해져서 제법 잘 다닌다. 여전히 주위를 경계하긴 하지만. 영화가 꽤 긴 편인 것 같아서 루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단 아니었다. 초반에 송강호가 등장했을 때, 저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전이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고 역시나 극이 흘러가면서 그는 내가 생각했던 어울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공유는 극 중에서 핵심 인물이다. 한 일에 비해서 결말이 너무 아쉽게 돼 버렸지만 그게 최선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러한 영화를 보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며 살아야지'라는 1차원적인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감동 받아서 찔끔 울기도 했던 것 같고. 하지만 지금은 저런 생각과 함께 나에게 저런 책임 의식이 있는가? 하고 되묻게 된다. 과연 나라면 저 시대에 저렇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을 것인가? 쉽게 답을 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게 나는 감히 또 한 번 그 인물들에 대해서 존경, 감사라는 뻔한 단어들로 표현하게 될 수밖에 없다. 뻔한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깝다. 한편, 이런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의 공급이 많아지다보니 자연스레 소비도 많이 하게 되면서 영화 속의 일들이 사실인지 찾아보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나의 그 습관 중 대표적인 예로 <덕혜옹주>를 들 수 있겠다. 영화만 보고선 다 사실인 것 같고 감동을 받은 것 같았는데 찾아보니 역사적 사실과 매우 다른 걸 깨닫고 김이 빠졌다. 하지만 <밀정>은 그 시대와 상황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 역사적 사실도 크게 거른 부분이 없어서 유익했다. 역사 영화로서 무난하고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관에 가기 전에 도서관을 들렸었다. 위저드 베이커리를 드디어 반납하고 새로운 책 두 권을 빌렸다. 한 권은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라는 책이고 다른 한 권은 구병모의 <방주로 오세요>라는 책이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는 이틀 간 다 읽었다. 허지웅 씨가 쓴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만 그 일기장은 그냥 '오늘은 누구를 만났고 뭘 해서 즐거웠다'같은 뻔한 일기가 아닌 '사회', '상황', '문화' 등을 엿볼 수 있는 유익한 일기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다. 사실 방송으로 접하는 게 다라서, 그마저도 그분이 나오는 방송을 잘 보지 않는다. 그래서 잘 알지 못했는데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느낀 점은 나도 내가 쓴 일기로 책을 내 보고 싶단 거였다. 물론 나는 그분보다 글도 잘 쓰지 못하고 지식도 얕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이니까.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단 거였다.
<500일의 썸머>를 보았다. 최근 재개봉을 했었는데 그땐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못 봤고 오늘 봤다.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에 대해 찾아봤는데 대부분 '누군가와 헤어지고나서 봐야 할 영화'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누군가와 헤어지지 않았지만 헤어질 수 있으므로 미리 보기로 했다. 헤어지면 또 보면 되지, 뭐. 이런 생각으로. 초반은 답답했다. 톰아, 용기를 좀 내 봐! 마음으로 외치다가 중반부로 갈수록 짜증이 났다. 썸머는 도대체 뭐 때문에 저럴까.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저런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애초에 톰이랑 상식적으로 친구사이의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서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은 그녀에게도, 그에게도 새로운 길이 생겼으니까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어쩌면 뻔한 엔딩이 아니어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은 뻔한 엔딩이 아니니까. 나에게도 우연히 우연한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